선수: 마누 지노빌리

01 10월 2008

태그: 농구선수, 마누, 명단, 샌안토니오, 선수, 스퍼스, 아르헨티나, 올림픽, 지노빌리

마누 지노빌리는 2004년 아르헨티나에 농구 역사상 첫 금메달을 안기면서 농구 스타가 되었습니다. 4년 후에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모든 얘기는 아르헨티나의 바히아블랑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곳은 엠마누엘 지노빌리가 처음으로 농구를 배우기 시작해서 아르헨티나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곳입니다.

마누는 어린 시절 주변에서 항상 농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감독이었고 형이 프로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화려한 가족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낸 마누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지역 농구 클럽에 입단했습니다. 그 클럽에서 몇 년을 보낸 후 마누는 좀 더 강한 상대들을 상대로 실력을 기르기 위해 유럽으로 건너 갔습니다.

이탈리아에 진출한 마누는 빠르게 실력을 증명해 보이며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정교한 외곽슛이 과감한 첫 스텝과 결합하면 마누를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마누는 거침 없이 코트를 누볐으며 그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누의 활약에 감탄한 샌안토니오에서는 1999년에 마누를 지명했습니다. 하지만 마누가 당장 이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마누는 유럽에서 세 시즌을 더 보내면서 2001년 이탈리아 챔피언십, 두 번의 이탈리아 컵, 세 번의 올스타, 이탈리아와 유럽 리그 MVP를 수상한 후에야 비로소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입단했습니다.

마누는 샌안토니오에 입단하자마자 클러치 플레이어로서 NBA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마누가 벤치에서 펼친 활약은 팀을 우승에 일조했습니다. 그리고 마누의 발전에 가속도를 붙인 계기가 된 2004-05년 시즌에서는 올스타로 선발되며 포스트 시즌에서 평균 득점 20.8, 평균 리바운드 5.8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2005년과 2007년에 두 번의 NBA 챔피언십을 더 거친 마누는 2008년 올해의 선수 부문에서 6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마누의 수많은 수상 경력과 타이틀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것은 금메달을 획득한 아테네 올림픽입니다. 마누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치르면서 아르헨티나 국민의 가슴 깊숙한 곳에 각인되었습니다. 농구 개막전이 열리던 날 마누가 버저 비터로 세르비아를 따돌리자 관중들은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마누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아르헨티나가 준결승에서 미국을 상대로 펼친 경기였으며, 세계는 마누가 자신의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를 연출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한때 29점 차이로 뒤지던 아르헨티나는 결국 미국을 89-81로 제치는 위업을 달성하며 미국 농구 역사상 세 번째 패배를 안겨 주었습니다. 며칠 후 마누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마저 제압하며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아테네 올림픽은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마누에게 있어서도 최고의 대회였습니다. 마누는 19점이 넘는 평균 득점을 기록하며 MVP를 수상했습니다.

밤이 새도록 영웅 대접을 받은 마누는 농구를 처음 시작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당시 마누는 "크게 울고 싶기도 하고 큰 소리로 웃고 싶기도 하네요.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미치겠어요"라고 했습니다.

2008년 여름에 열리는 베이징 올림픽은 아르헨티나에게 어려운 대회가 될 것입니다. 만만한 팀은 하나도 없으며 특히 미국을 위시한 농구 강국들이 아르헨티나를 권좌에서 밀어내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마누는 미국에서 라이벌로 지내던 선수들과 혈전을 벌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마누와 아르헨티나 대표팀 역시 2004년의 승리가 운이 아닌 실력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2008에도 다시 우승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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